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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불완전한 존재감에 대하여...
    창작 2010. 2. 8. 15:28

     

    [당신의 불완전한 존재감에 대하여...]


    얼마전에 "존재감과 상실감"에 대해서 고민한 적이 있다.

     

    몇 달동안 거의 고립된 상태였지만 나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때로는 "대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완전한 고립은 아니었다.
    그 고립은 존재의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에 삶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평소에는 "존재감"에 대해서 그다지 생각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몇 달간의 고립이 "존재감과 상실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나는 이번만큼 자아상실감을 느낀 적이 없었고그동안은 나르시즘에 빠져서 나를 사랑하고 보호하고 연민했기 때문에 "나"라는 개체를 받아들였고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자들과의 관계속에서 자유로왔다.
    외로움을 별루 못느꼈고 때로는 혼자 있는 것이 편했고 사람들에게 기대치가 다른 사람들보다 적었다.

    점쟁이가 "무지 외로운 사주이고 다른 사람이라면 벌써 죽었는데 보살님이니깐 산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소속감이 없어졌기 때문에 그것이 계기가 되어 찾아온 "자아상실감"일 뿐 만일 여전히 소속감이 있었다면 "자아상실감"은 찾아오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소속감과 더불어 복합적인 상황이 있지만 말이다.

     

    #.왜 남들은 죽을 수도 있는데 나는 비교적 잘지내고 있는가?


    큰언니가 철학 전공이었고 집에는 철학 서적이 즐비했으나 표제만 봤을 뿐 정독을 한적은 없다.
    막연하게 서울대 미학과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성적이 안되어서 철학을 전공하고 싶었고 1지망에서 철학과 떨어지고 2지망 불문학과를 지원했다.

     

    고1때 대학교 1학년 오빠가 철학 전공인데 
    그와 함께 많은 대화를 했고 그 사람은 내게 "너는 실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공도 하지 않았고 책을 읽지 않으면서 어떻게 실존하지?" ,

    "너는 책에 써있는 것들을 읽지도 않고 스스로 생각한다"

    ,"너는 이방인 뫼흐소를 닮았어"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즉 "아웃사이더"이다.

     

    그 당시도 지금도 "실존"에 대해서 전공 서적을 읽은 것이 없으므로 구체적인 의미를 모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그는 내게 실존하고 있다고 말했을까?
    어릴 때 한참 의문한 적이 있고 지금 다시 생각한다.

    유독 내가 타자들에게 전달하는 능력에 비해서 책을 읽지 않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소통의 부재) 나는 스스로 사유[思惟]하고 있고 철학적이다.
    17살짜리에게 처음 그말을 한 사람이 있긴 있었지만 그 사람의 말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 증명받지 않아도 내 스스로 내가 철학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내가 사유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의 힘으로서"

     

    그러니깐 "신내림받은 자"가 한 말을 인정하고 같은 의미로서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실존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감을 끈임없이 타인으로부터 인식되어져야 하지만 나는 실존하므로 타인의 인식이 필요없는 것이고 그러므로 내가 "고독"해도 잘 견딜 수 있고 어쩌면 남들보다 덜 고독할지도 모르고 때로는 그 고독감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유달리 "자의식"이 강한 것은 나에 대해 충분히 의식하고 있으므로 타자가 나를 의식하는 것보다 내 의식이 더 정확하므로 타자로부터 나를 확인할 필요가 없고 타자가 나를 인식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말은 부정확할 수 있다.

    깨인자들이 쓴다는 책이 시시했던 까닭이 내가 이미 알고 있으므로 놀라울 것도 없고 때로는 내 생각보다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내 스스로 1%의 영감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도 타자의 판단이 아닌 내 스스로의 인식과정이 있었고 내가 판단한 것이다.
    남들은 나보다 철학적 사고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들의 인식과정이 불필요하다.

     

    점장이가 또 한 말이
    "너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너하고 싶은대로 한다"는 것이다

    비교적 그래왔던 편이고 자기 주장이 강했던 것은 내가 옳다고 믿었고 타자가 틀렸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고 들을 수 없는 것이다.

    나를 알지도 못하고 대화도 길지 않았는데 그런 비슷한 말을 하는 점장이는 내 운명을 볼줄 알기 때문이다.
    내 영혼을 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실존하고 있다."


    당신에 대해서

     

    #.당신은 왜 불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당신은 당신이 실존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나"라는 존재를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라는 개체를 받아들일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존재감이 약해서 불완전한 존재라고 인식한다.
    다시 말하면 당신은 자의식이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존하지 않으므로 당신은 고독할 수밖에 없고 "나의 고독감"과 "당신의 고독감"은 다른 것이다.

     

    "인간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래서 신이 필요하고 사랑이 절실하다.
    신으로부터 또는 자기편이 되어줄 수 있는 연인이 끈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해줘야만 자신의 존재감이 확실해지는 것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언제나 그렇게 불완전하다고 인식하지는 않는 편인데 유독 당신이 "불완전한 존재"라고 인식하는 것은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실제로 "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고 그것을 더 인식하기 때문이고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실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렇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실존"하지 않는가?

     

    "나"라는 실제의 개체와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나의 자아"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에게 "자의식"이 약하다고 했다.
    당신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으니깐 말이다.
    왜냐하면 "너"는 실제의 "너"와 타인에게서 받아들여지는 "너"사이에서 심한 괴리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너 스스로 자아를 억압하거나 너의 자아를 제대로 표출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 갈등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갈등이 지속되는 한 너는 실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너가 "나는 누구인가?"라고 끈임없이 갈등하는 것은 너의 "정체성"에 대해서 스스로 의문시 하고  너는 언제나 너의 정체성을 인정해주지 않고 의심하는 사람들로부터 "너" 자체가 외면당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너가 자의식이 약해보이는 것은 사실은 너가 누구보다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고 하지만 자의식이 강해보이지 않는 것은 자신의 자의식을 믿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는 너가 불완전한 존재로 느끼는 것이다.


    #.당신은 왜 나에게 "나는 불완전한 존재다"라고 말했을까?


    나는 스스로 사유하고 있으므로 누구보다도 타인에 대해서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다른 사람은 너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나는 너를 제대로 인식했고 너를 이해하고 있으므로 너는 내게 너의 내면속에 억압되어진 자아를 그대로 표출하거나 내가 끌어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제대로 인식하기 때문에 나와 있을 때 너는 실존하고 있고 너의 자의식은 확장된다.
    그러므로 나의 부재감은 너에게 고통이고 너는 끈임없이 나를 찾거나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거나 내가 너에게 유익하다.

     

    하지만 너는 나를 믿지 못한다.
    왜냐하면 너의 입장으로서는 내가 너를 배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어떤 진실을 말한다 하더라도 이전처럼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고 유독 다른 사람보다 내게 회의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제 와서 당신을 찾았는가?

     

    나는 실존하고 있으므로 타인이 그다지 필요없고 너 아닌 다른 사람과 잘 지낼 수 있다고 너는 생각한다.
    나도 너를 찾은 이유를 처음에는 잘 몰랐고 내 감정이 끌리는대로 했을 뿐이고 "너의 질문"이 결국 "나의 질문"이 된 것이다.

    나는 실존하고 있으므로 타자에 비해서 비교적 덜 불완전한 존재이다. 
    아니 완전한 존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존한다고 해서 남들보다 덜 고독감을 느낀다고 해서 (나는 다른 고독감을 가지고 있다)내가 행복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가 너아닌 여러명을 보아 왔지만 너가 유독 내 앞에서 너의 자의식이 확장되고 변화되어지고 너의 자의식이 강해질 때 내 존재감이 확대되고 기쁘기 때문이다.
    너는 내가 실존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몇 안되는 사람이고 너는 누구보다 나를 필요로 하고 있고 (너가 완성되어지니깐)그럴 때 나의 가치가 빛난다는 것을 알고 나는 행복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당신에게서 벗어났을까?

     

    나는 실존하고 있으므로 누구보다 끈임없이 자기 인식이 필요했고 자기 부정을 해보는 사람이다.

    너가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았고 그것이 유익하고  행복했지만 너가 나를 만나기 전에 너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하고 갈등하는만큼 
    우리의 현재에 대해서 현실감이 떨어지므로 그 상황을 부정했고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너를 이해했지만 내 "여성적 자아"는 너 앞에서 두드러졌지만 나는 당황했고 그런 나의 "여성적 자아"에 대해서 충분히 너는 나를 이해해주지 않았고 너는 여자로서 내게 믿음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 스스로 너가 어렸다고 했으니깐 내 말을 너는 인정할 것이다.

     

    #.우리는 왜 갈등하는가?

     

    너에게 내가 먼저 배반을 했으므로 너의 갈등은 이해될 수 있고 내가 너에게 풀어줘야할 부분이다.

     

    인간으로서 나는 실존하지만 여자로서는 나 역시 불완전한 존재이다.
    실존하는 나는 여성적 자아가 표출될 때는 실존감이 약해지기 때문에 나의 여성적 자아를 제어한다.
    내가 불완전해질 때는 너가 나를 이해해줘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여성적 자아가 유독 불안할 때는 너의 내면적 자아가 흔들릴 때이다.

     

    동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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