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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러운 연못에 연꽃이 핀다.
    삶/신경증 2010. 4. 15. 14:35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고결한 정신은 겹겹의 업보로 다시 피어나는 진리의 설법


    이제 한시름 났으니 드라마 좀 봐줄터.


    기사를 보니 윤여정이가
    "배우는 자존심이 많이 상해야 진정한 배우가 된다. 때문에 배우에게 위기는 약이며, 바닥을 치고 올라 와야 더 높이 올라간다"라고 했다한다.


    설령 배우뿐일까?


    자존심이 상하지만 마음 먹기에 따라서 상한 채 방치해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 조절을 잘 할 수 있다면 더 큰 자존심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지난한 삶을 통해서 익혔다.
    익혔다 하지만 여전히 어렵다.

    자존심을 숙일 때는 어떤 목적 의식이 뚜렷하고 명분이 바로 설 때에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을 때는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 수치스럽기만 하다.

    생각하면 별 일도 아닌데 어찌나 자존심에 목을 매는지 내 자신 답답할 때가 많다.
    태생이 백조인지라....


    물 흐르는데로 흘러가야 순리인데 지금 역류하려고 한다.

    방치하고 무심했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끊어진 필름을 이어붙이고 잃어버린 퍼즐을 찾으려고 애쓴다

    삶이란 오욕 [汚辱]이다.
    그래서 그 발자취를 지우고 싶었고 잊고자 했고 상관하지 않으려고 했단다.
    삶속에서 흔들리고 지쳐갔고 아팠고 시련이었고 상심했으니 그 전부를 뿌리채 뽑아버리고 영원히 도망치고 싶었다.
    새로운 땅에 묘목을 심고 다듬고 별개의 '나'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사주 팔자를 보면 외로울 고가 평생 따라다니고 어떤 복도 없다 하지만 스스로 쌓아온 내 공덕으로 앞으로의 삶이 보다 윤택해질 것이라고 한다.

    '내가 무슨 공덕을 쌓아왔단 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로운 일을 했으면 했지 해로운 일은 별로 하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난 이기적이진 않다.

    그 순간 손해를 본다 하더라도 명분 없이 자존심을 버린 적은 없다.
    불의에 타협한 적은 없다.
    하긴 때로는 정의가 무엇인지 불의가 무엇인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적어도 사심을 갖고 사회 관계를 이은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가는 길을 쉽게 가지 못했다.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내 자신을 속일 수는 없기에.


    '그런데 내가 공덕을 어디다가 쌓은거야? 하늘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내가 쌓은 공덕이라는 것은 내가 그동안 잊고자 했던 잊혀졌던 오래 된 또는 짧았던,스치고 지나갔던 그들 인간군상들에게 반영된 내 이미지다.

    그들이 갖고 있는 내 이미지가 내 '공덕'이고 그 이미지를 잘 활용할 수 있어야 내게 인덕이 되어 돌아온다는 의미인 것이다.

    오욕스러워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 삶 속에 해답이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게는 아주 많은 인적자원이 숨겨져 있었다.


    스침에 불과했던 인연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얼마나 진솔하게 대했는지 그들이 갖고 있는 내 이미지를 잘 연결시키면 앞으로의 내 삶은 플러스 인생일 것이다.

    그래서 인연의 꼬리를 찾아 나는 역류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업의 결실이 이뤄질 것이다.

    무슨 공덕을 쌓았는지 의문시하던 수수께끼가 풀려서 기분이 좋아졌고 오욕이라고 믿었던 삶의 진실을 캐낸 기쁨을 기록한다.


    '더러운 연못에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연꽃이 피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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