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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의 개혁에 '인권'은 없다!
    시사 2011. 4. 14. 13:56



    "우리 학생들 압박이 많습니다. 학점을 B 이하로 받으면 수업료를 내야 하니 부담이 크죠.정년 보장이 안 된 우리 교수들도 압박이 심합니다. 그래서 내가 제일 걱정하는 게 자살입니다." -서남표-

    자신의 정책이 학생이나 교수를 죽음으로 내몰 수 있음을 알면서도 밀어붙였다는 이야기다.



    경쟁은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고 정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허용되는 것이나 '무한경쟁'은 최대한의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 경쟁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려 불가피한 희생자의 출혈까지 감수한다.

    무한경쟁 시스템이 맞지 않으면 자퇴하거나 전학하면 될텐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것에 안타깝고 의아해하는 것이 보편적 심리다.


    하지만 서남표 총장은 무한경쟁의 폐해로서 자살자가 속출한다는 통계적 패턴 인식이 형성되어 있기때문에 자살을 수용한다.

    경쟁에서 실패를 수긍하는 학생이 있는 반면 실패를 방어하거나 반대급부로 공격하는 것을 경험칙으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서 총장의 발언은 자살자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로부터 개혁에 대한 반발로 공격권이 형성될까봐서 걱정하는 것이다.
    그가 희생자를 애도하는 마음이 있다면 서바이벌 교육을 강행하지 않았을 것이나 이미 결과를 예측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사전 포석까지 치밀하게 준비한다.
    즉,서남표식 프로젝트는 성과물에 수반될 수 있는 위기상황(사퇴압력,개혁 폐지)에 대처할 수 있도록 다각적으로 사회적 관계망을 구축하며 언론플레이에도 능하다.



    총장의 위기!

    사퇴의 압력을 받으면서도 선방할 수 있는 것은 경쟁 구도에 있어 승리자의 이기심과 결탁되며 '서남표식 개혁'이 합리적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둔다.
    생존자의 인권은 루저의 인권을 무시하며 loser는 실패자이면서 손실자이므로 성과물의 평균치를 떨어뜨리는 방해물로 파악하는 것이다.


    [첫 비상총회를 열고 "(서 총장의) 경쟁 위주의 제도 개혁 실패 인정을 요구한다"는 안건에 대해 투표를 진행했으나, 찬성 인원(416명·48.8%)이 과반수에 못 미쳐 부결됐다. 반대는 317명(37.2%), 기권은 119(14.0%)명이었다. 학생 절반 이상이 서 총장 개혁이 실패라고 대답하지 않은 것이다.]-기사발췌-


    위와 같은 결과는 당연하므로 서 총장은 사퇴의 압력을 인정할 수 없다.


    카이스트의 위상이 높아질 때 개인의 위상도 높아지므로 총장과 이해 [利害]관계가 일치하는 학생은 개혁을 지지하며 개혁이 실패했다고 인정하는 학생이야말로 실패자의 변명으로 치부한다.
    사퇴를 종용하는 상황이 매우 부당할 뿐이며 끝까지 소신을 지키는 이유는 학생들을 사랑하고 자신을 신뢰하는 학생에 대한 지도자적 사명감때문이다.
    여기서 학생은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학생으로 한정되고 그 학생들은 개혁의 수혜자다.
    총장의 의식이 복제된 수혜자들이야말로 미래를 책임질 카이스트인이다.
    카이스트 개혁의 업적은 희생자의 비극 정도는 상쇄될만한 것이며 '효율적 시스템'에서 손실의 발생은 지당하다는 관점이다.



    ['차등 장학금'과 '징벌적 수업료'는 개념이 다르다]

     

    카이스트의 특성상 '차등 장학금'을 대체할 수 있는 '징벌적 수업료'제도는 다른 제도와 달리 서남표식 무한경쟁 시스템을 완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매우 효과적이다.
    개혁의 실패를 인정하는 세력은 '징벌적 수업료'로 표현하지만 지지하는 세력은 의도적으로 '차등 장학금'으로 표현하는 것은 카이스트 사태를 해결하는데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차등 장학금'보다 '징벌적 수업료'는 부정적인 느낌이 강해서 같은 의미인데도 일부러 표현을 달리 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 자체가 다르다.


    "과학영재로 양성하는 것이 카이스트의 설립 취지,등록금 면제로 이어졌고 징벌적 수업료는 위법 소지가 있다 한다."


    일반 대학에서는 장학금이 어떤 기준을 통과한 일부에게 지급되지만 카이스트는 모든 학생이 장학생에 해당된다.

    개혁이 목적이라 하더라도 일반 대학에서는 '징벌적 수업료'같은 제도가 나올 수가 없는 것이며 카이스트의 특성상 '징벌적 수업료'같은 변칙적인 제도가 마련된 것이므로 '차등 장학금'과 '징벌적 수업료'는 엄연히 의미가 다르다.
    '징벌적 수업료'는 선장학금이 지급되며 학업 성적이 일정 기준에 미달한 학생은 다음 학기에 미달만큼 수업료를 지불한다.
    '차등장학금'은 성적우수자가 주체라면 '징벌적 수업료'는 성적미달자가 주체이다.


    '차등 장학금'은 장학생이 우월의식이 생겨도 대다수의 학생에게 수업료는 의무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영향받지 않는다.

    '징벌적 수업료'는 국민의 세금으로 장학금이 보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미달되어 일부 장학금을 토해내야 하기 때문에 열등감,수치심,죄의식,경제적 부담을 비롯한 고통이 따른다.
    성적이 기준치 이상의 학생도 긴장감,스트레스를 유발하며 그만큼 보상 심리로서 성과에 집착한다.
    '차등 장학금'은 노력의 댓가로 장학금이 보상이지만 '징벌적 수업료'라면 장학금을 전제로 두기때문에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장학금은 보상의 의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서 총장이 성과를 달성하는데 있어 '징벌적 수업료'의 최대 효과를 인식하고 이 제도를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이유다.

    개혁 지지자 또한 '차등 장학금'과 '징벌적 수업료'가 진정으로 개념이 같다고 생각해서 긍정적인 이미지의 '차등 장학금'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이 다른 만큼이나 결과나 효과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정은 무시하고 성과주의에 집착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징벌적 수업료'에 적응하면서 적자생존의 가치관이 형성되고 자연스럽게 성과주의가 체득된다.
    서 총장이 이 점을 간과할리가 없으며 학생들의 심리를 활용해서 개혁을 주도하고 동료가 자살해도 이기심이 주입되어 충격에 무뎌진다.


    "미국 명문대는 자살률이 더 높다" 등 사례를 열거해 통계화시키며 부작용이나 폐단도 '효율적 시스템'으로 간주함으로서 개인의 의식은 부패하고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를 양산시킨다.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의 개혁에 '인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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