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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시나무의 존재는 가시나무새의 선택으로 의미가 있다라....
    tv/스타 2011. 4. 29. 18:50
     


    피치못할 사정으로 부모가 자식을 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어서인지 엄마와 아기를 버리는 유경이의 여우같이 뛰어난 연기력 탓인지 의외로 유경에 대한 동정론이 흐른다.
    정은이가 유경의 가족과 행복을 뺏은 것이며 한별이 혈육이 아니니 영조와 딸을 유경이에게 돌려줘야한다는 반응도 있다.


    강우조차 유경을 가르켜 '폭탄 덩어리'라고 지칭,아버지 최종달에게 복수하려는 유경의 행동을 저지하려고 하며 유경 스스로도
    엄마 윤명자에게 "나는 괴물이야"라고 시인할 정도로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파행을 저지른다.
    일부 시청자의 유경 옹호는 같은 현상을 보고 다양한 생각과 다른 판단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선악'에 대한 개념과 분별력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감정 과잉과 이기심의 극단을 재현하는 듯해서 답답하고 어처구니없다.


    영조가 미혼녀와 결혼한다고 할 때 영조 엄마도 애딸린 과부로 사랑에 빠졌던 처지가 비슷하길래 정은을 며느리삼을 수도 없으며 명자에게도 정은이가 명자의 딸인 점이 못마땅하다고 한다.

    아이를 남편 집안에 보내야만 하는 매몰찬 엄마였는데 명자 역시 자식을 거두지 못한 기구한 팔자이기 때문에 그런 딸을 귀한 아들과 결혼시키고 싶은 마음이 쉽게 열릴 수 없는 것이다.
    동병상련이 '인륜지대사'를 결정하는데 있어 최대의 방해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자식에게까지 같은 상처와 주변의 조롱을 대물림할 수 없는 부모의 심정이고 인간적인 정서일 것이다.
    영조의 말을 빌리자면 '자식을 버리는 이상한 엄마들'중에서도 가장 납득할 수 있고 변명이 가능한 영조엄마인데 유경에게 "어떻게 네가 내 아들 영조의 자식을 버리느냐?"라고 다그치자 "어머님도 자식을 버린 적이있으니 제 심정을 알 수 있잖아요"라고 유경이 맞짱뜬다.


    유경은 일 저질러놓고 상대의 약점을 틀어쥐고 되받아치는 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고 위기 상황을 모면하는데 있어 '악의 경지'만큼은 드라마 캐릭터상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강우가 영조와 정은 사이에서 다른 마음 품지말라고 하면 "너야말로 딴맘 품은 적 없니?"하고 응수하며 "내 앞에서 우리 아버지 험담하지 말라"라고 하면 "너 아버지가 무슨 짓을 저지른걸 알고도 그런말 할까?,하긴 너야 잘못이 없지"하면서 강우의 자존심을 건들며 아들에게 아버지를 고발한다.
    자신이 버린 가정에 죽자사자 재뿌리면서 "너가 좋아하는 여자가 남의 둥지에서 뻘짓하는 건 아니?"라고 강우와 정은의 인격을 싸잡아 모독하고 자신의 뻘짓을 정은에게 씌우는 자기합리화의 극치는 유경의 존재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가시나무' 그 자체다.
    성공과 복수에 가득 찬 이기심으로 엄마와 자식을 버리고 바보처럼 멍청한 정은이 거둬준 은혜도 망각하고 (여기까지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정은의 사랑과 숭고한 희생정신을 모독하고 '뻘짓'이라는 단 한마디의 말로 가정 파탄자로 몰아부쳐서 자신과 동급의 처지로 전락시키는 위악적인 파행을 거듭할 수 있는지 난감무지일 뿐이다.


    영조가 여친이 생겼다고 하자 정은인줄 몰랐고 정은의 약혼 소식을 듣고 유경이 상심했어도 정은의 가족, 명자와 한별을 차지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지만 약혼자가 영조라는 것을 알고 발작적으로 돌아버려 약혼을 방해하려고 했다.

    이전에도 마음은 있어도 적극적이지 않다가 정은이 먼저 영조가 어릴 때 관심가던 오빠라고 고백하자 온몸으로 유혹해서 영조를 차지하던 상황과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유경이가 영조를 사랑하는 것이 과연 진심일까 의문스럽다.
    유경이의 자존심이나 알량한 양심때문에 영조에게 마음에 없는 소리로 상처를 주다가도 정은이와 영조가 연결만 되면 이성을 잃고 영조에 대한 사랑이 용솟음쳐서 온마음으로 방해공작을 펼친다.
    엄마 명자의 존재를 부정하다가도 그나마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주고 편들어줄까 싶어서인지 유경이의 캐릭터 도도하고 오만한 잔상은 실종되어 다급하게 '엄마'소리가 나오고 엄마의 치맛자락 붙들고 늘어지며 어린애처럼 칭얼댄다.



    "별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꽃이 많아? 혼자서 다 키웠어요? 보이는 것 다 탐이나, 전부다,왜 정원이가 거기 사냐고? 원래 다 내꺼잖아,갖고싶어서 죽을 것 같다고"



    정말로 요즘에 대가족이 살기에는 보기드물게 낡고 초라한 집은 소박하면서도 다채롭게 피어난 색색깔 꽃들의 향연이 마치 디즈니랜드의 테마랜드처럼 생동감넘치게 눈부시며 언제나 행복의 퍼레이드가 펼칠 듯 정성스럽게 가꿔져 있다.

    빛을 쏘여 물을 주고 푸르른 잎사귀를 보호하며 은은한 향에 취해 화단을 가꾸는 사람은 명자가 맞을지언정, 친모의 정성이 자신의 것이 될 수도 있다고 순간 착각하는 유경이가 간과하는 것은 그 꽃밭에 생명을 불어넣은 사람은 정은인 것이다.

    왜 유경은 정은이가 아니면 행복을 보는 법을 알지못하며 정은이는 유경이와 연관되지 않으면 행복을 만들지도 못할까?
    유경은 정은이가 있어야 존재의 의미가 있고 정은이는 유경이의 죄를 덮어줘야만이 삶의 의미가 있다.
    유경이는 가시나무이며 정은이는 가시나무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외롭다못해 휑한 가시나무는 죽은 목숨과 다르지않다가 가시나무새가 비로소 찾아와서 가시나무에 찔려 피를 철철 흐르고 상처를 내야만 가시나무새는 꿈을 꿀 수가 있고 가시나무는 생명을 느낀다.



    "가시나무새의 꿈은 가시나무의 꿈이다"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자'가 '소유할 가망성을 가진자'를 그리워하며 대리만족하는 처절함이 '존재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살기위해서 노래부르는 직업가수와 노래를 부르는 아티스트의 차이처럼 '삶'은 삶이라 하더라도 '죽은자'와 '산자'의 간극처럼 대립되는 관계속에서 가진자,산자를 찬양한다.
    그러나 기막힌 것은 가시나무도 가시나무새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가시나무새도 가시나무가 있어야 존재감은 확대된다는 아이러니가 그저 참기에는 참으로 민망하다.


    정은은 자신의 처지를 '선녀와 나뭇꾼으로'으로 비유하면서 기어코 사라져서 실연당한 나뭇군처럼 비관하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나뭇군을 배신할 수도 있고 자신의 사랑을 지킬 수도 있는 선녀의 위치에 놓여있는 것이다.
    가시나무야말로 사랑을 기다리다 배신당할 수도 있는 나뭇꾼이며 가시나무새는 가시나무를 배반할 수도 있는 선녀이니 언제나 선택권은 가시나무새에게 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맞고 어쩌면 한결같이 드라마의 트랜드가 이다지도 결정적인 것인지 모든 빛나는 가치까지 운명론에서 좌우지될 수 밖에 없는 설움,


    "인생은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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